견제와 균형
견제와 균형
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존재한다면, 왕정이나 독재정이 훨씬 더 효율적인 정치체제이다. 민주주의는 가장 좋은 제도가 아니라,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차선책일 뿐이다.
불완전한 인간과 권력이나 금력에 휘둘리기 쉬운 인간상에 맞는 체제이다보니 민주주의는 많은 견제장치를 통해 균형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 된다.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독재로 갈 수 있기에.
이러한 견제장치의 대표적인 것은 선거이다. 국민이 직접 뽑는 이 장치는 하지만, 집단이 커질수록 잘 모르고 뽑게 되는 단점이 커진다. 뽑고 나서 나타나는 폐단을 막기 위한 장치가 삼권분립이다. 이 두 장치 역시 여러시대, 여러국가에서 끊임없이 도전을 받는다. 자기만이 옳다는 도취에 바찌거나 권력에 맛을 들인 자들은 선거를 조작하고, 삼권분립을 끊임없이 무력화하고자 한다.
일반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여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거나,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가 그 정당의 후보자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, 행정부와 입법부는 완전한 분리보다 어느 정도 같이 가는 경우가 많다. 여당이 과반석 이상의 다수당이 될 경우 그 경향은 심해진다. 지극히 개인적 의견으로는 여당 : 제1야당 : 나머지 야당의 비율이 4 : 4 : 2 정도가 되는 게 민주주의 취지에 잘 맞지 않을까 싶다.
어쨋든 입법부가 완전한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니 삼권분립에서 중요한 것은 사법부의 독립이다. 반대로 독재를 꿈꾸는 집단에서 눈에 가시같은 게 사법기관이다. 사법부는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내놓은 증거를 바탕으로 판단을 하게 되지만, 잘못한 사람이나 관련된 증거를 직접 찾아나서지는 않는다. 그러기에 사법부가 식물화되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검찰 등 준사법기관의 독립 역시 중요하다.
권력자의 입장에서도,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할 수는 있지만, 자신의 지인이 기소되고, 불리한 증거가 언론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법부 자체보다는 준사법기관인 검찰을 마음대로 부리는 것이 오히려 더 필요할 수 있다.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검찰 길들이기가 필요하고, 개혁은 그 명분이 된다.
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조국 전 장관의 법무부 장관 지목은 훌륭한 초석이 된다. 조국 전 장관 가족이 피소되고 조국 전 장관은 장관직을 사퇴한다.
하지만, 이는 오히려 더 강력한 성격의 추미애 장관이 법무부 장관을 만들기 위한 길이 되었다. 인사 청문회에서 연속 반대한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, 야당 입장에서 연속 반대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기때문에 큰 무리없이 장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.
의도는 모르나, 의도되었다면,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며 미안해 하는 것이 이해가 가고, 추미애 장관을 포함하여 정부 여당인사들이 그렇게까지 조국 전 장관을 수호하려는 것도 이해가 된다. 정권을 위한 희생이었으니. 그리고, 검찰개혁에 맞춰서 마치 무죄가 이미 입증된 듯 조국 전 장관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다.
이러한 선택에는 콘크리트 지지율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. 조국 전 장관 이슈가 일시적이 아니라 지지층 마저 타격을 줄거라 여겼으면 선거 전에 무리수를 두기 힘들었을테니.
더구나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사태와 정은경 본부장이 이끄는 질본의 선방은 조국 전 장관 이슈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선거의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예상 보다 더 확실히 입법부를 장악하게 되었다.
국민들에게는 비극이지만,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코로나19라는 선거 호재를 미리 알았더라면,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간에 굳이 조국 전 장관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.
국민의 눈에는 비리로 보일지 몰라도 그들 입장에서는 '자기들만의' 대의를 위한 희생이었기에 반드시 지켜줘야할 마음의 짐이 무거울 수 밖에 없다. 그리고, 다행히 개혁을 빙자한 검찰 장악은 검찰을 통한 사법부 무력화라는 원래 목적과 함께 조국 전 장관 구제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.
하지만, 선거의 압승은 마치 독이 든 성배처럼 되었다. 승리에 취한 정부 여당은 속도 조절에 실패하고, 폭주로 인한 탈선도 보이기 시작한다. 이원욱 의원은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할 검찰의 총장을 대통령의 개에 비유하고, 송영길 의원은 성희롱 문제에 대해서도 자기편이 가해자면, 친하면 상대가 불쾌해도 그럴 수 있다고 한다. 검찰개혁의 의도를 알 수 있고, 왜 현 정권에서 계속 성관련 문제가 불거지는지 알 수 있게 한다.
앞에서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에 나온 제도이다. 실제로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. 이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.
하지만, 대통령과 정부, 여당 사람들은 선거에 이긴 것이 국민들이 자신들을 완벽하다고 인증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. 자신들은 무조건 옳고, 다른 의견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. 정부도, 국회도, 검찰도, 법원도 마찬가지다.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맡기지 말고, 완벽한 존재인 자신들이 장악해야 잘 돌아갈거라고 여기는 것 같다. 싫은 소리를 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면, 가짜 언론이라고 하고, 명예훼손이라고 한다.
자기편은 완벽하고, 무조건 옳다. 그러한 착각이 바로 독재의 시작일 수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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